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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서 시작된 미국의 독립

by 라떼박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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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서 시작된 미국의 독립

아메리카노

우리가 즐겨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미국에서 시작된 커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가는 스타벅스 또한 미국에서 시작이 되었죠 이렇듯 우리의 커피 생활에 있어서 미국의 커피는 빠질 수가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죠 오늘은 미국의 건국보다 앞선 미국 커피의 역사에 대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미국의 건국보다 앞선 커피의 역사

네덜란드를 통해 미국 땅에 들어간 커피는 영국의 식민 지배에 대항해 독립 의지를 일깨우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보다 역사가 짧은 신대륙이지만 커피의 문화와 역사는 유럽과 시대를 함께 했는데요 미국은 1775년 독립혁명을 1776년에는 독립선언문을 공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커피는 미국의 건국보다 약 170년 앞선 1620년대 네덜란드를 통해 미국 땅에 전해 졌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지금의 맨해튼을 차지한 뒤 이곳을 통해 커피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선 커피보다는 홍차를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그 후 1607년에서야 미국 최초의 커피 전문점인 런던 커피하우스와 거트리지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독립과 커피

보스턴 차 사건

토마슨 제퍼슨과 함께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마련하고 13개 주의 단합과 독립 의지를 이끌어내 '최초의 미국인'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보스턴에 있던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정치 모임을 자주 열고 계몽사상과 자치 의식을 퍼뜨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원두를 유통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독립에 있어서 중요한 구실은 바로 커피였는데요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설탕에 대한 세금을 부과한데 이어 1765년에는 인쇄물에도 세금을 매겼습니다. 이에 버지니아 의회는 반발을 하며 나섰지만 영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와 차에 대해서도 관세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술렁거렸고 보스턴에 문을 연 커피하우스 그린 드래건 태번에 모여 토론을 하며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770년 보스턴에서 5명의 시민이 영국 경비대의 총에 맞아 사망하자 민심은 흉흉해졌고 이에 영국은 타운센드 법령을 철폐하였지만 차에 대한 세금만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은 보스턴항에 정박해 있던 선박을 습격하여 차 상자를 바다에 버리는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영국 정부는 급히 군대를 파견하여 보스턴 항을 봉쇄하여 식민지 탄압을 하였습니다.

보스턴 시민들은 저항의 방식으로 즐겨 마시던 차를 끊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차 불매운동으로 인해 커피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때 커피에 물을 타 마시는 오늘날 아메리카노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커피를 마시는 문화 시위는 결국 사람들의 독립 의지를 북돋우는 정신운동으로 발전하였고 1775년 5월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영국을 상대로 독립을 선포하였습니다.

유명인과 커피

1901년부터 1909년까지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문난 커피 마니아였습니다. 커피를 하루에 3.8리터나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커피를 많이 마시는 습관 탓에 그의 커피잔은 유난히 컸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커피잔은 욕조보다 커 보였다"라고 했을 정도로 커피를 즐겼다고 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1907년 테네시주 내슈빌의 맥스웰하우스 호텔에 머물 때 그는 그곳의 커피 맛에 매료되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구먼" 이라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맥스웰하우스는 이 문구를 광고에 활용했고 지금까지 상품마다 브랜드 아래에 표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에서 커피를 소재로 자주 활용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에선 마리아가 로버트 조던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말한 문구는 커피업체의 광고 문구로 오랫동안 애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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