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와 커피
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축구와 삼바축제 그리고 커피입니다. 향미가 우수하며 산미가 좋은 아라비카 원두의 생산지이며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이 어떻게 최대 생산지로 발돋움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속에 숨어있는 브라질의 독립과 노예제 폐지와 자연환경의 파괴 등 브라질의 내면과 라틴아메리카 커피 재배 이야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커피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독립과 노예제 그리고 이주 이민자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질의 커피 재배의 시작은 브라질인들의 손끝에서가 아닌 포르투갈 왕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포르투갈을 침략할 당시 포르투갈을 떠나 브라질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브라질을 왕국으로 선포한 후 커피나무 재배를 장려하였습니다. 그러다 포르투갈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왕은 다시 아들을 섭정으로 남겨두고 포르투갈로 떠났습니다. 그 후 라틴아메리카에 독립의 바람이 불자 아들인 페드루 1세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를 다스렸지만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그 당시 브라질에는 광물 채굴이 활발했는데 자원이 고갈이 되었고 마침 커피 재배가 확신이 되자 당시 노예들은 자연스레 커피 수확 노예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자원의 고갈과 커피 재배의 확산으로 커피 수확 노예 규모도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악덕 재배업자들 때문에 노예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다치거나 죽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그와 반대로 재배업자들은 부를 계속해서 축적해 나갔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브라질에서 노예 수입이 금지가 되자 커피 재배업자들은 유럽인 이민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민자들에 의해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전 세계로 커피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노예들보다 우수하였고 노예들보다 값이 싸기 때문에 커피 농장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노예제 폐지에 발 벗고 나섰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노예들은 이전보다도 더 천대받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자연과 커피 그리고 원주민
생태학 역사가 워런 딘은 커피가 브라질의 환경에 미친 영향을 기록하였습니다.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 나무들을 베었으며 베인 나무들을 불에 태워 하늘엔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딘은 이 광경을 보고 "현대의 전투지와 비슷해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묘목들이 잘 자도록 재를 비료 대용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결국 토양의 양분을 없애는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막대한 양의 커피를 재배한 브라질이지만 환경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라질과 인접해 있던 나라들 역시 커피나무를 재배하였는데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커피 재배업자들은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원주민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거나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몇몇 원주민들은 도망가다 잡혀 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과테말라에선 원주민들이 강제노동에 대한 시위가 있었지만 군대가 동원되어 약 1천 명이 넘는 원주민이 죽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최대 생산국의 이면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맛을 깨워주었고 사교를 위해 필수적 요소인 커피가 다름 아닌 원주민과 아프리카인들의 노예화와 더불어 그들의 죽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위해 수많은 열대 지방의 산기슭들을 침범하였고 환경의 황폐화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대 생산국이지만 모든 이들이 풍족하게 사는 것이 아닌 악덕 농장주들만 풍족하게 살고 그 외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극심한 빈부격차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이러니 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달콤 씁쓸한 커피 한잔에 희노애락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오늘 포스팅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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